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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새벽 -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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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섹스게이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0-03-13 02:06 조회 2,021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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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바람은 차갑고 이름을 붙일 수 없는 별들은 처음과 끝을 모른 채 하늘 위에서 춤추고 있었다. 정우의 이마를 타고 흐르는 굵은 땀방울이 그의 턱을 미끄럼틀 삼아 미끄러져 자동차 본네트 위로 떨어졌을 때, 이어폰으로 귀를 틀어막고 있던 은비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직 멀었어?”



반사적으로, 너무나 반사적으로 정우의 이마 어딘가에 불규칙한 실주름이 몇 개 쯤 새기어져 갔다. 흩어져 내려가는 정신의 틈을 비집고, 풀벌레가 울어대는 소리와 함께 언젠가 들어본 기억이 있는 빠른 비트의 음악소리가 적당한 비율로 뒤엉켜 정우의 귓전을 간지럽혔다.



“후우. 모르겠다. 깜깜해서 뭐가 뭔지도 모르겠고.”



“그럼, 쓸데없이 시간만 잡아먹고 있었던 거야?”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



“발끈할 거 없어. 내가 틀린 말 한 것도 없잖아? 오빤 꼭 누가 진실을 말하면 그렇게 성을 내더라?”



본네트를 꽉 잡고 있던 정우의 두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리곤 자신의 물컹거리는 입술을 미백의 치아로 꼭 깨물었다가, 거의 반쯤 신경질적으로 본네트 뚜껑을 내려 닫았다.



자동차 곁에 앉아있던 은비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신의 입술을 수놓고 있는, 그것과 아주 꼭 닮은 듯한 그 여리여리한 분홍색 핫팬츠 차림으로.



“이제 어떻게 할건데?”



“낸들 아냐?”



“그런 무책임한 말이 어디 있어?”



“그럼 나더러 어쩌라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단 말이야.”



“그럼 뭐해? 결과가 있어야지.”



“야. 넌 고생한 사람 생각은 안하냐?”



“그러니까 처음부터 제대로 했어야지. 사서 고생한게 누군데 나한테 화를 내?”



정우는 은비에게 초점을 고정시킨 채, 자리를 지켰다. 할 말이 생각이 나질 않는다.



정우는 시동이 걸리지 않는 자신의 자동차 옆에 기대어 서서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은비역시 더 이상의 소모적인 논쟁은 피하려는 듯 자동차 보조석에 앉아, 자신의 귓구멍에 다시 이어폰을 가져다 꼽았다.



정우는 품에서 담배를 하나 꺼내 입에 물었다. 그리곤 가볍게 담배 한 모금을 삼킨 뒤, 자신의 여자가 방금 전에 했던 말들을 곰곰이 생각해 봤다.



‘처음부터라. 처음부터인가?’



기화점이랄까. 필시 은비의 그 말은 그것과 다를 것이 없었다. 다가올 결혼 날짜. 은비 어머님과 아버님, 다시 말해, 언젠가 자신의 장모와 장인이 될 그들의 얼굴이 천천히, 아주 천천히 머릿속에 떠올랐다.



시간이란 꽤나 무서운 놈이다. 칼로 그것을 살짝 도려내어, 그 단면을 훔쳐보면, 그 단면엔 그다지 내 보이지 않아도 될법한 일들을 꽤나 잔인하게 비춰주곤 한다.



정우는 생각했다. 극히 중산층에 속하는 자신의 집안이, 극심한 경쟁률을 뚫고 공기업에 취업한지도 벌써 3년이 다 되어가는 자신이, ‘그들’로 하여금 그토록 싸잡아 무시당하고 비난받아야 할 대상이 되어야만 하는지에 대해.



은비의 어머니가 언젠가 정우에게 그렇게 말했었다.



‘무능력의 지표’가 있다면, ‘넌’ 그 중에서도 가장 탑일 것 이라고.



‘다 끝내고 싶다. 할 수만 있다면.’



굳이 보지 않아도 될 것 같은 시간의 단면. 돌이킬 수 있다면, 다시 시작으로 돌아가 은비가 말한 대로 ‘바른’ 선택을, 그래 누구보다도 먼저 올바른 선택을 하고 싶다. 하지만 정우는 자기 자신을 잘 알고 있었다.

누구보다 빠르게 현실에 순응하는 법을 배워왔던 것 역시, 다름 아닌 바로 자신이다.



정우는 아직 불이 꺼지지 않은 담배를 바닥에 내던지며 천천히 도로 어두운 도로쪽으로 걸어갔다. 정우의 뒤쪽에서 은비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정우는 일정한 보폭을 유지하며 앞으로 걷기만 했다.









2.



한 사람의 전화기 배터리는 완전히 방전이 되어 숨을 죽이고 있었고, 또 나머지 한사람의 전화기는 통신사의 영향인지 전파가 아예 잡히질 않았다. 어둠은 시간에 비례해 짙게, 더욱더 짙게 깔리어 갔고, 텅 빈 도로를 내달리는 자동차는 단 한 대도 찾을 수 없었다. 운전석 위에 매달린 네비게이션이 아까 마지막 생명줄을 아슬아슬하게 붙잡고 자신의 역할을 다 한 덕분에, 지금 이곳이 충주 어디쯤 된다는 사실만 간신히 알 수 있었다.



“어떻게 할 거야?”



어느 사이엔가 자신의 등 바로 뒤에 다가와 서 있던 은비가 정우에게 소리쳤다. 애써 반응하고 싶지 않았다. 정우는 별 수 없이 낯 선 도로만 쳐다봤다. 누군가가 지나가길, 단 한 대의 자동차라도 좋으니 제발 자신의 눈 앞에 나타나길 바라고 또 바랬다.



“대답 안 해? 어떻게 할 거냐구 묻잖아?”



“뾰족한 수가 없잖아. 전화는 둘 다 불통이고, 그렇다고 이 곳 지리도 모르는데, 무작정 어디로 걸어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래서, 하고 앉아있는 짓이 고작 그거야?”



“짓?”



“그래, 짓.”



정우가 꿇었던 무릎을 천천히 펴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약혼녀의 말투 하나하나가 영 거슬리는 밤이다. 팔짱을 낀 채 자신을 올려다보는 은비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정우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리고 은비의 얼굴에 드러나는 옅은 빛줄기와 함께, 뭉툭한 자동차 엔진소리를 몸으로 다 느낀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무슨 일이유?”



인간의 외모만큼 그 기준점이 모호하게 나뉘는 것이 이 세상에 또 있을까? 잘생겼다와 못생겼다. 착해 보인다와 못돼 보인다. 그 애매한 기준 잣대를 굳이 봉고차 운전수에게 들이댄다고 해도, 확실히 명확한 답이 떨어질 것 같지 않았다. 그저 얼굴 여기저기에 거웃 하게 돋아난 수염자국을 훔쳐보면서, 정우는 정우 나름대로 그 운전수를 정의하려 노력했다.



“아 감사합니다. 아니, 죄송합니다. 놀라셨죠? 실은 지금 서울로 올라가는 길인데, 자동차가 고장이 나서요. 공교롭게도 휴대폰도 방전에, 딱히 연락할 길도 없고.”



“그래서 뭐, 태워 달라는 거유? 서울까지?”



봉고차 운저석에 앉아 있던 남자가 귀찮다는 얼굴로 정우의 말을 잘라냈다. 정우는 운전기사의 얼굴을 뻔히 쳐다보면서 침을 삼켰다. 일정한 억양의 말투와 가느다란 눈매. 얼굴과 관련한 그 모호한 기준점에서, 처음 보는 사내는 아슬아슬한 차이로 착하다기 보단 못돼 보이는 쪽에 다가가 서 있었다. 정우는 잠시 고민을 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니요. 괜찮으시면 전화 좀 잠깐 빌릴 수 있을까요?”



섣불리 태워 달라는 말이 나오질 않았다. 정우는 다시 침을 삼켰다. 그러면서도 처음 보는 사내의 얼굴을 계속해서 훔쳐봤다. 사내는 한 쪽 팔을 운전석 창가에 올려놓은 채, 슬쩍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잔득 집중해야 들을 수 있을 정도의 사람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어딘가 조금 이상하다. 그건 누가 듣기에도 명백한 두 사람의 대화였기 때문이다.



“후우. 상황은 딱하게 됐지만, 내 휴대폰도 엔꼬라.”



“그러세요? 그럼 사람이 나올만한 곳까지 만이라도 좀 태워주시면.”



“후우. 우리도 갈 길이 멀다우. 미안하지만.”



“잠깐만요. 선생님. 그러지 마시고.”



정우는 절박했다. 그런 이유로 이 낯선 사내가 방금 전 말한 우리라는 말이, 도통 무엇을 뜻하는지 정확하게 캐치해 낼 수 없었다.



"선생님, 사정 좀 봐주세요."



"손 놔유. 요즘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 세상인데."



얼굴만 놓고 보면, 그 말은 정우가 상대방에게 해야 꼭 들어맞을 것 같은 말이었다. 정우는 애원하듯 운전석에 앉은 남자에게 손을 뻗었다.



“오빠.”



정우는 봉고차의 운전석 창문을 꼭 부여잡은 채, 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운전대 위에 손을 얹고 있던 그 낯선 사내와, 그리고 이제야 겨우 그 정체를 드러낸 ‘우리’의 나머지 한 사람이, 보조석에서 그 거웃한 얼굴을 비스듬히 드러냈다.



“무슨 일이야?”



“별일 아니야.”



정우는 다시 봉고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이제야 정체를 드러낸, 나머지 한 사람과 두 눈이 마주쳤을 땐, 짐짓 놀란 표정으로 뒷걸음질 칠 수 밖에 없었다. 그제야 운전석에 앉아 있던 사내의 ‘우리’ 라는 그 한마디가 떠올랐다.



“선생님, 부탁드립니다. 어떻게 좀 안되겠습니까?”



정우가 간절한 얼굴로 소리쳤다. 하지만 낯선 사내들에겐 그런 자신의 목소리가 하나도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봉고차에 앉아있던 그들의 시선은 정확하게 정우가 아닌 어딘가로 향해 있었다. 정우는 이 상황이 조금 불쾌하게 느껴졌지만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지었다. 새벽 내내 사람의 흔적이라곤 찾아 볼 수 없는 이 곳에 마냥 머물러 있을 수만은 없다.







3.





운전석에 앉아 있던 사내가 먼저 고개를 돌렸다. 정우는 사내의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그렇지만 자신을 보고 인상을 조금 구기고 있는, 사내의 그 얼굴 표정이 보기 싫어져 슬쩍 헛기침을 토했다.



“잠깐 기다리슈. 자리 정리 좀 할테니깐.”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정우는 한숨을 내쉬며 몇 번이고 고개를 숙였다. 다행이다. 그리고 운전석 문을 열고 나오는 남자를 피해 한걸음 정도 뒤로 물러섰다.

보조석에 앉은 채 여전히 은비를 쳐다보고 있는 또다른 남자가 신경 쓰이긴 했지만, 어떻게든 이곳에서 빠져 나갈 수 있다는 생각에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후우. 자. 그럼 타슈.”



“네. 감사합니다.”



정우는 봉고차 뒷문을 열었다. 그런데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은비가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팔짱을 낀 채 조금은 무미건조해 보이는 얼굴로 이쪽을 쳐다보고 있는 은비를, 정우와 낯선 남자 두 명이 차례대로 쳐다봤다. 정우는 사내들의 눈치를 살피면서 천천히 은비쪽으로 걸어갔다.



“뭐해? 빨리 타.”



“오빠야말로 지금 뭐해?”



“뭐하긴. 겨우 차 잡았잖아. 빨리 타고 여기서 빠져 나가야지.”



“그래, 고작 생각해서 한다는게 이거야?”



정우는 화가 났지만, 자신의 등 뒤에서 이 상황을 훔쳐보고 있을 사내들의 모습이 신경 쓰여, 최대한 목소리를 아래로 깔며 은비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뭐가 또 마음에 안 드는데?”



“오빠 일 처리하는 방식.”



“그래? 그럼 나 혼자 갔다 올게, 여기서 잠깐 기다리고 있을래?”



“이런 식으로 감정적으로 나올거야?”



“뭐가 감정적인데? 아 씨. 그럼 어쩌라고!”



쌓아 두었던 무언가가 크게 폭발하듯, 정우가 소리쳤다. 놀란 토끼눈이 된 건, 당장 은비만이 아니었다. 건조한 입술에 침을 묻혀가며 그 상황을 가만히 지켜보던 봉고의 사내들 역시, 정우의 그 커다란 목소리에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지금 소리친거야? 나한테?”



“너야말로 이성적으로 행동해. 아 됐고. 너랑 싸울 시간도 없어. 어떻게 할 건데? 같이 갈래? 아니면 나 돌아올 때까지 혼자 여기서 있을래.”



“오빠 정말 상식 이하구나?”



두개골이 지끈거린다. 국경선을 가운데에 두고 차가운 눈빛을 나누며 극명하게 대치중인 남과 북의 그 사람들처럼, 은비와 정우는 서로를 똑바로 쳐다봤다. 그리고 이번에도 정우가 무슨 말인가를 내뱉으려는 찰나에, 은비는 시동이 걸리지 않는 자동차 쪽으로 냉큼 발걸음을 돌려 걸어갔다. 이미 한계점을 넘어버린 정우의 인내심은 은비를 불러 세우는 대신. 발걸음을 돌려 봉고차 쪽으로 걸어가게 만들었다.



“여자친구분은 같이 안가시고?”



“네.”



“그럼 여자 혼자 남겨두고 가시겠다는 거유?”



정우는 대뜸 그게 댁들과 무슨 상관이냐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봉고차 뒷좌석에 올라타면서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운전석에 앉아 있던 사내가 그대로 입을 꾹 다물어 버렸다. 그러고 보니 사내는 아까부터 어딘가 조금 불안해 보이는 눈치였다. 그 일정하고 느린 템포의 말투와는 꽤나 대조적으로.



“잠깐 있어봐.”



사내가 운전대를 꼭 움켜쥐는 그 순간에, 지금까지 말을 아끼며 보조석에 가만히 앉아있던 남자가, 정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사내는 이 상황에 묘한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는지 정우를 보며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여자를 여기에 혼자 두고 가는 건 조금 그렇지. 아무리 젊은 사람들끼리 건강한 치기로 싸웠다고는 해도. 여기가 얼마나 위험한 곳인데. 산세도 험하고.”



정우는 이제야 보조석에 앉아 있던 사내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볼 수 있었다. 운전을 하고 있던 사내의 얼굴지수가 ‘못됨 55’ 정도라면, 이 사내의 얼굴은 필시 ‘못됨 80’ 정도는 되어 보였다. 덕분에 정우는 그가 내뿜는 이상한 위압감에 사로 잡혀 별다른 대꾸를 할 수 없었다.



“여기서 10분? 15분 정도 차타고 나가면, 휴게소 나오니까, 이 새끼랑 같이 차타고 다녀와. 대신 여기엔 내가 있을 테니까.”



“네?”



“어이!”



아마도 서로 다른 의미의 반응이었을 것이다. 정우와 운전석에 앉아 있던 사내는 거의 동시에 보조석 남자를 향해 소리쳤다.

그가 말이라고 내뱉는 그것도 그것이지만, 대뜸 반말을 날리는 그의 태도는 대단히 언짢게 느껴졌다.

누구 하나 이 상황이 달가울 리 없었다. 정우에게나, 운전석에 앉아 있던 그 사내에게나.



“작작혀.”



보조석에 앉아 있던 사내의 팔을 잡으며 운전석에 앉아 있던 사내가 말했다. 정우는 영문도 모른 채 작작하라는 그의 말이 신경 쓰였지만 섣불리 어떤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래봐야, 15분이야. 이왕 마음먹고 도와드리기로 한 거, 잘 도와드리면 좋잖아. 자 그럼. 그렇게 하는 걸로?”



“잠깐! 잠깐만요.”



"왜. 그럼 가서 애인 데리고 오던가. 나도 그게 마음 편하니까."



정우는 고개를 돌려 가만히 멈춰서 있는 자신의 자동차를 쳐다봤다. 이어폰을 낀 채 보조석에 앉아있는 은비의 얼굴. 다시 화가 났다. 자신이 뭘 잘못했고 또 그렇게 비난받아야 했단 말인가?



"아 어떻게 할거야? 사람이 호의를 베풀어도."



"그렇게 하죠. 제 여자친구 좀 부탁드립니다."



운전석에 앉아 있던 남자가 해석이 불가능한 얼굴로 정우를 쳐다봤다. 정우는 입술을 꼭 깨물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못됨 80"의 남자가 조금 상기된 얼굴로 봉고차에서 뛰어 내렸다. 운전석에 앉아있던 남자가 그런 그를 쳐다봤지만, 그게 전부였다.



“자, 그럼 출발! 잘 다녀오시게!”











4.





“싸웠슈?”



출발한지 5분정도 지났을까? 당연히 화가 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운전석의 사내가, 그 평평한 음성으로 정우에게 말했다. 정우는 불과 5분여 동안 벌어졌던 그 일들이 정리가 되질 않아 혼란스러웠다. 그래도 어렵게나마 선의를 베풀어준 사람에게 최소한의 예의라도 보여야 할 것 같다는 생각에,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렇게 됐네요.”



“후우. 걱정하지 마유. 조금만 있으면 휴게소 나오니까.”



“휴게소요. 네. 암튼. 정말 감사합니다.”



사내는 입을 꾹 다물어 버렸다. 그리곤 정우가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가볍게 입술을 꼭 깨물었다.

정우는 명백하게 대화의 끈이 잘리어 나간 이 상황을 다른 한 쪽으로 밀어 넣고, 딱딱한 봉고차 시트에 자신의 허리를 가져다 기댔다.



‘짐가방? 짐가방 치고는 어쩐지 엄청 커 보이네.’



자신이 앉아 있던 자리, 바로 앞에 놓인 짐가방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쩐지 차안의 공기가 이상하다. 기분 나쁠 정도로. 정우는 막연히 그것이, 저 정체모를 가방으로 부터 흘러나오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해 봤다. 하지만 운전석에 앉아 있던 사내의 날카로워 보이는 눈과 자신의 그것이, 룸미러 안에서 마주치자, 서둘러 짐가방에서 자신의 두 눈을 거두었다.



‘차라리 잘 됐다. 너도 이참에.’



정우는 팔짱을 끼고 달리는 자동차의 바깥 풍경을 쳐다봤다. 방금 전에 여자친구와 다투었던 일들이 떠올랐다.

자신의 여자친구를 무책임하게 그곳에 남겨두었다는 그 어떤 죄책감보다도, 뜻모를 통쾌함 때문에 슬쩍 한 쪽 입 꼬리를 위로 치켜 올렸다.





1부 end.







잘 부탁드립니다.

글은 예전 어느 번역물 작가님이 써 주셨던 고속도로 강간사건을 모티브로 적어봤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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